보건의료인과 통일보건의료의 도전

김영훈 • 고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장/ 고대 대학원 통일보건의학협동과정 주임 교수  

우리는 왜 북한 주민의 건강과 의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구한말, 지구상 가장 못사는 나라중의 하나이었던 조선의 불쌍한 백성을 질병과 가난에서 구하기 위해 이 땅을 찾아 목숨을 건 선교와 서양의학을 전해 주었던 파란 눈의 선교사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을까? 그들의 헌신으로부터 시작된 이 땅의 서양의학은 병원과 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지고 오늘 대한민국의 눈부신 의료와 사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알렌, 에비슨, 그리고 로제타 홀 선생님과 같은 분들을 지금 이 순간 다시 기억해 본다. 로제타 홀 여사를 지구 반대편에 있던 조선으로 이끌었던 스승의 한 마디, ”네가 진정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거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하라!” 이 글귀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로제타 홀 여사는 한국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잃는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최초 여의사인 박 에스더 선생을 비롯한 많은 여의사를 양성하고 조선 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하였으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진료를 통해 이 나라 수많은 환자들에게 서양 의학의 혜택을 나누어 주는 일에 헌신하며 모든 생을 이 땅, 이 사람들을 위해 바치셨다. 오늘 북한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의료인들을 교육하는 일에 헌신할 제 2의 알렌, 에비슨, 또 로제타 홀 선생님이 절실한 북한, 그 한반도 남쪽의 오늘을 우리는 의료인으로 살고 있다. 원조를 받기만 하던 대한민국이 사반세기 만에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발전을 거듭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저개발 국가에 학교, 우물사업, 병원 등 활발한 지원과 선교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바로 가까운 이웃이자 같은 민족인 북한을 위한 그 어떤 지원과 교류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통일을 꿈꾸고 미래를 위해 통일을 이뤄내야 할 현재의 대한민국이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가?

북한의 의료 실태는 지금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김정은의 무모한 핵 실험으로 야기된 외부로부터의 대북 제재 강도가 심해질수록 집권세력은 영향을 크게 안 받겠지만 일반 주민들은 지금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산모나 영 유아의 건강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붕괴된 의료체계 하에 의료물품과 약을 의료기관이 아닌 장마당에서 구하고 있고 큰 병원에서의 환자 치료도 장마당에서 구입해 온 약과 주사제, 의료기구에 의존하고 있다니, 병원에서 과연 올바른 치료가 이루어 질 수 있겠는가? 식량 부족과 열악한 의료 실태는 북한 주민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출산 여성과 신생아 사망률은 한국의 7~8배에 달하고, 영·유아의 약 30-50%가 만성적인 중증 영양장애 상태에 있다. 어린 시절의 영양 결핍은 전 생애에 걸쳐 심각한 장애를 야기한다. 북한 청장년의 건강도 지금 매우 열악하다. 미국 존스 홉킨스 보건대학원과 공동으로 북한 이탈 주민의 건강 상태를 조사한 고대 안암병원 내분비 내과 김신곤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대기근 시절에 성장기를 거친 북한의 청장년은 각종 만성질환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 영양결핍 상태였기 때문에 음식을 먹으면 체내에서 최대한 지방으로 축적하려는 체질이 된 것이다. 이들은 당뇨병과 각종 심혈관 질환의 고 위험 집단이다.

독일 통일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독은 통일 십수년 전부터 동독의 보건의료 개선을 위해 대규모 지원을 지속해 왔다. 이념적으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치열하게 대립해 오던 시절에도 이런 지원은 계속되어 왔었다. 그럼에도 통일 이후 20여 년 동안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하고서야 동독과 서독 주민의 건강 격차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서독과 동독보다 훨씬 큰 남한과 북한의 격차를 생각하면 통일 비용을 줄이는 노력과 함께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주민들의 건강한 오늘을 위한 지원과 협력은 반드시 재개되어야 한다. 지속성이 가능하며 실질적인 남북 의료 협력에 지금이라도 정부와 민간단체, 특히 의료인들이 동참해야 한다.

보건의료는 남, 북한 두 이방인들을 같은 문법으로 소통하게 하고,

통일 전후 사람의 통합을 위한 가장 따뜻한 치유의 도구

의료가 국익에 기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 사회가 부담 가능한 비용과 노력으로 국민의 건강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 향상은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저 출산·고령화 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노동력의 양과 질을 확보하게 해준다. 또 보건의료는 남북한의 통합을 위한 가장 실질적이고 따뜻한 치유의 도구이다. 이를 위해 북한에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의료 지원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제제가 조건부로 일부 해제되어야 된다. 최근 의료계를 비롯한 민간 차원에서 북한 의료 지원 재개와 통일 시대의 보건의료를 준비하기 위한 다각도의 활동을 시작하고 있으나 아직 결실을 맺기 까지 에는 그 길이 너무 힘들고 멀기만 하다. 민간 차원에서라도 대북 인도적 사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어야 한다. 남북 의료협력은 미래를 위해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의료인들이 통일을 준비할 것인가?

동서독은 통일을 위한 다양한 학문적 연구를 기반으로 오랜 기간 제도적, 인적, 물적 준비를 해왔음에도, 통일 후 독일은 상당기간 난관과 갈등에 직면하였다. 따라서 준비된 통일이 매우 중요하며, 특히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가장 중요한 영역인 보건의료의 교류, 협력, 통합을 위한 준비가 시급하다.

정치, 이념을 떠나 생명 살리기 의료를 구현하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인들이 정치, 경제, 문화, 그 어떤 집단에 우선하여 황폐화된 북한 의료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그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쳐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굶주림과 억압에 의해 서서히 자립 의지를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는 북한의 동포들에 대해 그 동안 우리가 보여 온 무관심과 냉담에 대해 반성하고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우리는 그래선 안 된다”는 자각을 먼저 해야 한다.

결핵, 특히 다제 내성 결핵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도 결핵의 유병률이 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통일 시대 한반도를 위협하는 심각한 감염병으로 진전될 수 있어 지금부터라도 남북한 공동 퇴치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또 휴전선 부근의 남한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늘고 있다는 것은 국경이 따로 없이 곤충이나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의해 매개되는 질환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남북경색이 아무리 심해지더라도 남북 공동 퇴치 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경험하며 같은 땅의 공동 운명체란 이런 감염병의 위험에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값진 교훈으로 배웠다. 이 땅에 창궐한 결핵과 감염병을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하지 못한 체 통일이 된다면 통일은 엄청난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공동 노력이 남북 통합을 위한 귀한 시작이 될 수 있으며 건강한 통일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재개하되 약품 보내기와 같은 일시적이고 단말마적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남북의료 협력 모델을 세워야 한다. 북한의 보건의료 교육 시스템, 특히 의과대학을 비롯한 보건 의료인 교육을 위한 인프라 지원과 병원의 선진화 및 북한 의료인 스스로 북한 의료 체계 개선에 힘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관민 공동의 사업으로 대한민국 유수의 대학병원과 국공립병원, 또는 지역 보건소와 북한 각급 별 의료 기관과의 1:1 결연을 통해 인적인 교류와 기본 의료 시설, 제약 및 치료 장비 지원과 같은 사업을 고려해야 한다. 통일 시대에 대비하여 북한 의료 인프라 구축을 시작하는 것이다.

통일의료보건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여야 한다. 북한의 보건의료 현황을 이해하고, 남북한의 보건의료 지식과 기술교류에 앞장서며, 건강한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통일보건의학전문가를 체계적으로 키우는 것이다. 남북한주민들의 건강한 통일을 가로막는 보건의료영역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극복 할 수 있는 비전과 리더십, 학문적 및 실천역량을 갖춘 인재를 교육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보건의료상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오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실천할 수 있는 사명감과 전문 능력을 갖춘 통일보건의학전문가의 양성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대학 내에 통일 의학 교실 또는 과를 신설하여 다양한 인재 풀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

우리 안에 이미 들어 온 통일, 북한 이탈 주민의 건강을 돌보고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갖는 일과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미래 건강한 통일을 위해 필요한 노력이다. 북한이주민 연구는 우리 안에 들어온 북한에 대한 연구이자, 통일 이후를 대비한 ‘프로토타입’의 연구이다. 이들 중 북한에서 의사, 치과 의사, 간호사, 약사 및 의료인으로 살아 왔던 분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남과 북이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데에도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또 이들 중 앞으로 대한민국 에서 의료인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과의 네트워크 구축 및 멘토-멘티의 역할을 해나가는 것도 우리가 잊지 말고 해나가야 할 과제이다.

보건 의료 분야는 남북 상호교류를 통한 공동 연구가 용이하며, 타 부문의 교류와 협력에 선 순환 유발이 가능한 영역이자 통일을 위해 가장 유효한 선투자 영역이기도 하다. 이제 “통일된 그날”을 꿈꾸며 통일 역군으로 이제 의료인들이 나서서 작은 벽돌 하나만이라도 놓는다는 심정으로 남북 통합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가 100여년 전 서양 선각자로부터 받은 은혜, 이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료인들이 북한의료에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출처 : 2016. 9. 8 제1차 통일보건의료포럼 발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