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칼럼
[칼럼]탈북자에게서 남한의 의사들이 희망—그리고 자료—을 찾다

탈북자에게서 남한의 의사들이 희망그리고 자료을 찾다

 

북한의 망명자들의 건강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은 언젠가 보건 관리가 다시금 남북의 공동 책임이 될 것이라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1996년 최악의 기근이 일어난 와중에 J 씨는 중국 국경과 가까운 북한의 한 병원에 10달 된 아들을 데리고 갔다. 의사들은 아이의 지독한 위통을 완화시켜 주지 못했고, 그는 곧 죽었다. 몇 년 후, 그녀는 간경변을 앓고 있던 남편과 함께 그 병원을 다시 찾게 되었다. (“그는 술을 좋아했어요.”라고 그녀는 회고한다.) 그녀는 다시 임신 중이었고, 남편은 그녀에게 자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해 에너지를 아껴 두는 편이 나을 거라고 했다. 그는 사망했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산했다.

검은 머리를 라인석 머리핀으로 꽂은 마른 여성인 J씨는 남한으로 탈출해 온 다른 많은 탈북자들처롬, 보복을 두려워 하여 자신의 성명을 완전히 밝히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남한의 수도인 서울의 한 언덕 위에 위치한, 바쁘고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대학 병원인 안암 병원의 작은 회의실에 앉아 있다. 나는 그녀에게 이 죽음들이 북한에서 살았던 결과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다른 나라에 살았더라면, 그들 중 얼마라도 막을 수 있었을까요

제목 없음.png?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 보면서 자신의 금빛 스카프 끝을 접었다 폈다 했다. “아마도 전부 다 그 때문이었을 거에요.”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이제 46세인 J씨는 서울에 살면서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고,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활동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것은 북한의 조건들이 그 국민들의 장기적인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목표로 하는 연구다. ‘남한 내 탈북자 건강 (North Korean Refugee Health in South Korea)’의 약어로 NORNS라고도 알려진 이 연구는, 남한에서는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서구인들의 귀에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전제에 기초해 이루어진다. 바로 이 두 나라가 언젠가는 한 정부 하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전제다.

이 일이 언제 일어날지, 그리고 그에 앞서 어떤 지정학적 대변동이 일어날지는 이 자리에는 논외로 하겠다. 현재 훌륭한 남한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이 협력단은 남한에 살고 있는 약 3만 명의 탈북자들 가운데 1,100명 이상의 탈북자들을 모집해 그들의 신체적 특징, 정신적 건강 상태, 그리고 생명유지와 연관된 다른 필수 자료들을 측정하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모두 언젠가 찾아올 통일이 가져올 보건관리의 부담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고려대학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 연구자들은 또한 정치적 협상이 실패한 자리에서도 과학적, 의학적 협력은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해 가을, 그들은 통일 후 보건관리를 위한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공중 보건학에 대학원 과정을 신설했다. NORNS 연구자들이 그들의 첫 번째 논문에서 썼던 것처럼, “남한 내 탈북자들의 건강은 한국인들이 좀 더 긍정적인 운명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NORNS 연구의 선도적 연구자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내분비학자인 김신곤 박사이다. 우리가 만난 날, 그는 흰 의사 가운을 입고 복도를 너무도 재빨리 이동해 가서 난 그를 따라잡기 위해 거의 조깅하다시피 했다. 그는 권위를 내세우는 편이 아니었고, 학생들과 농담을 하고, 우리의 통역자가 의학 용어를 번역하다가 막힐 때마다 사용해야 했던 자신의 변변치 않은영어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한국전쟁이 휴전을 한 지 15년 뒤인 1968년에 태어난 김 박사는, 자신의 친척들 가운데 21명이 한국의 남서부에 위치한 정읍에 있는 한 교회에 집합하라고 해서 모인 뒤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에 알게 되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 중에 우리 가족을 죽이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북한이 강제로 퇴각한 뒤 남한 군대가 그 자리를 차지했고, 북한을 지원했던 마을 사람들은 응징의 의미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 일은 지금도 김 박사가 고개를 가로 젓게 만든다.

이 살육 이후, 남은 가족들 중 다수가 목사가 된다. 김 박사는 이시야서 613절을 인용해서 설명한다. “심지어 나무가 잘린 뒤에도 뿌리는 남는다. 민족으로서 너희는 뿌리이며, 성스러운 씨앗이다.” (Even when the trees get cut, the roots remain. You as people are the root, the holy seeds.) 그는 다른 길을 택해 의대에 진학한다. “목사들은 영혼의 건강을 돌보지만, 사람들은 신체적인 건강 또한 돌봐야 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내분비학자로서 그는 전쟁에 뒤따른 수 십년 간의 급속한 경제 발전 동안, 남한 사람들의 신진 대사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대단히 정통해 있다. 집단으로서 남한 사람들은 서구인에 비해서 비만도는 낮지만, 상대적으로 당뇨병의 발생률이 높다. “전쟁 후, 임신 여성들은 영양실조였습니다. 그런 엄마의 배 속에 있던 아기도 영양실조를 겪게 되고, 아기의 췌장 용적은 상대적으로 작아지게 됩니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경제가 회복되고 식량 소비가 증가하자 작은 췌장은 높은 칼로리 섭취를 지탱할 만큼 충분한 양의 인슐린을 분비하지 못한다.

 

서울에서 어느 날 오후 나는 지하철을 타고, 6.25전쟁을 기억하기 위해 지어진 대규모 박물관인 전쟁기념관에 갔다. 찾아가는 길은 상당히 쉬웠다. 지하철과 도로 표지판은 한국어와 영어로 적혀 있고, 여성의 음성으로 나오는 안내 방송이 매 전철역을 안내해 주었다. 영국 셰필드 대학의 인류학자인 마커스 벨(Markus Bell) 박사는 탈북자들과 함께 현장연구를 진행했는데, 남한인들이 북한인들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싶다면 형제의 상을 가서 봐야 한다고 내게 제안했다.

기념관 입구 가까운 곳에 우뚝 서 있는 이 조각상은6.25전쟁의 전장에서 두 명의 군인이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이다. 더 큰 쪽이 남한이고, 지친 그의 북한 형제는 남한 형제에게 기대어 서 있다. 그 조각상은 남한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벨 박사는 길을 잃은 다른 형제를 돌보는 책임을 안고 있는 더 큰 형제의 모습이 그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요즘 형재애와 화해는 머나먼 길이다. 양국 간의 관계는 삼엄한 경계 태세로 얼어붙어 있는 상태이고, 북한은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미사일 시험을 계속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에도 대규모 군사 장비인 로켓 발사기와 지대지 미사일, 그리고 온갖 형태의 군용 보트와 군용기 등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방문객들은 장비에 얼마든지 올라타도 되고, 이 구역은 어린 아이들로 가득 차 있다. 내 사진을 검토하다가 나는 나중에 우연히 한 어머니가 서 있고, 그 어머니의 아이가 로켓 발사기 안에 있는 모습을 찍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놀랍지 않지만, 통일에 대한 지지는 하락하고 있고, 이는 특히 높은 실업률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젋은 세대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어떤 통일이든 많은 비용이 듭니다.”라고 벨 박사는 말한다. 이것이 젊은 남한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 이유다. “우리한테 북한이 왜 필요하죠? 그 사람들 그냥 미친 사람들이잖아요. . . 게다가 우리만 엄청 돈이 많이 들 거에요. 그보다 그들이 우릴 먼저 파괴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남한에게 북한은 왜 필요한가? 이는 심장병 전문의이자 전 안암병원장인 김영훈 박사가 자주 생각해 온 문제이다. 김 박사는 고려대 의대의 통일 공중 보건학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으며, 김신곤 박사와 마찬가지로 (친척 관계는 아님),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의 이사회에서 일하고 있다.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은 남북 간 건강불균형을 줄임으로써 통일을 장려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민간단체이다.

김영훈 박사는 남북간 협력을 통해 남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배울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남한인들에겐 그들의 이웃을 도울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한국인들은 작은 반도를 공유하고 있고, 한강은 남북을 모두 관통해서 흐르고 있으며, “새와 모기들은 비무장지대의 남쪽에 있는지, 북쪽에 있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는 마냥 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1979년에 남한에서는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 말라리아가 박멸되었지만, 국경을 따라 다시 나타났다. 양국은 비록 다른 이유에 의해서이나 높은 결핵 발병률을 보이고 있다. 남한에서 젊은이들특히 젊은 여성들은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고, 영양이 결핍되어 쉽게 감염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김 박사는 지적한다. 약제내성 결핵 계통이 북한에서 등장했고, 그럴 경우 환자들은 치료의 부작용을 신체가 감당하지 못해 치료의 과정을 포기해 버리는 일도 있다.

국제 기구들이 자금을 지원한 예방 접종 캠페인 덕분에, 북한에서 일부 질병은 감소하는 추세다. 세계 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홍역, 디프테리아, B형 간염의 아동 접종 비율은 사실상 미국보다 약간 더 높은 상태다. 하지만 김 박사는 통일이 다른 질병의 전파를 더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고 말한다. “ 북한의 의사들이 이 문제를 우리와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렇게 해야 전문 의료진들이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비는 절대적으로 필수적입니다.”라고 인류학자 벨 박사 또한 동의한다. “만일 모든 게 엉망이 되고, 수백 만 명의 내부적이고 외부적인 난민을 떠안게 될 때. . . 남한은 결핵 발병 같은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와 다른 전문가들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대등한 관계에서 접근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

원문 출처: https://undark.org/article/north-korea-health-care-norns/

: 2017620, 새러 탤포스 (Sara Talpos)

번역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Undark2016년 발행된 디지털 과학 잡지로 과학과 사회의 교차점, 즉 정치와 경제 영역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과학이 사화와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탐구하여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1712월 한국을 방문하여 본 재단과 고대 안암병원과 통일보건의학협동과정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이 길어 일부만 소개하였습니다. 기사 전문을 읽기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재단 웹싸이트(ifhme.or.kr)를 방문하시거나 사무국에 연락주시면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