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민 교수, 의료윤리연구회 월례강연..."북한의료 이해부터"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경색된 남북 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특히 남북 교류의 물꼬 역할을 맡고 있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북한 보건의료 환경은 물론 사회·경제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착실한 대응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박상민 서울의대 교수(서울의대 통일의학센터·가정의학교실)는 5일 의료윤리연구회가 주최한 월례강의에서 '북한 보건의료 이해와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시 고려할 점'에 관한 주제강연을 통해 "북한의 보건의료인은 상등보건의료일군(의사·고려의사·위생의사·구강의사·약제사), 중등보건의료일군(준의사·준의·조제사·조산원·보철사), 보조의료일군(간호사) 등으로 양성기간도 2년에서 6년까지 다양한데다 준의와 간호사가 3년 특설교육 과정과 6년 통신교육 과정을 이수하면 의사가 될 수 있다"면서 "남북 보건의료 통합 과정에서 예상되는 의료인력의 통합 문제를 놓고 사회 갈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WHO 자료를 보면 2014년 현재 북한의사는 7만 9331명(위생의사·고려의사·준의·야간통신과정 포함)에 달한다.
박 교수는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동독의사의 면허를 그대로 인정했고, 장벽 붕괴 직후 동독의사 1만 명이 서독으로 이주했지만 공산주의 체제의 잔재인 낮은 개선 의지·작업 능률 저하·환자에 대한 권위의식과 무례함·새로운 가이드라인과 보험에 대한 낮은 문화적 이해·다른 병원 문화와 의료전달체계 등으로 갈등을 겪었다"면서 "의료수준이 낮은 동독의사에 대한 폄하로 24%의 실업률과 낮은 수입(서독 의사의 85%)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남북 통일 시 북한 의료진의 남한 이주로 인해 북한지역은 보건의료인력의 부족 현상이, 남한지역은 의료인력의 과잉으로 의료인간 갈등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한 박 교수는 "북한 의료진들이 북한 지역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독일은 통일 이후 동독지역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무상으로, 서독지역에서는 본인부담금을 부과해 가격 차이를 유지함으로써 급속한 인력의 이동을 조절한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통일 초기 북한 지역에 집중적인 보건의료 시설과 장비 확충을 진행하고, 북한 의료인력의 단기 재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효과적인 대북 보건의료지원과 재원 배분을 위한 방안으로 클 틀에서의 기획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점에도 무게를 실었다.
박 교수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등 의료계·의학계 대표단체를 중심으로 대북 보건의료지원을 위한 기획과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정부-NGO-기업이 공유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교류협력 방안으로는 남북 의학용어 통일·의료인 재교육·북한 B형 간염 주산기 감염 예방사업·토론회 등을 비롯해 경협과 인도주의 지원 융합 모델인 필수의약품·소모품·수액·특수 영양식품 생산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새터민 북한의사들은 언어(의학용어)·의학적 경험·경제 장벽을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꼽았다"면서 "남한에 거주하는 북한 출신 의료진들이 전문 분야에 재적응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것은 남북 보건의료인력 통합을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남북 보건의료 교류 협력에 앞서 대기근 사태로 인한 고난의 행군과 국제사회의 경제 제제로 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의 경제·사회 환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주의 무상의료·예방의학·정성의학으로 유지해 온 북한의료는 대기근 사태로 인해 고난의 행군 이후 1998년말부터 안전망이 붕괴되면서 국가 책임에서 개인 책임으로, 민간요법·사설의료·자가진료 행태가 횡행하고 있다"고 밝힌 박 교수는 "병원에 약이 없어 10명 중 7명이 비공식 의료시장인 장마당을 통해 외국의 원조 의약품을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주의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비공식 의료시장(유상의료)이 부상하면서 의료인과 환자의 행태 역시 변화하고 있고, 만성질환과 합병증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질병예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박 교수는 "즉각적인 효과를 보이는 항생제·진통제·수면제·소화제 등의 약물 남용은 물론 고려의학(한의학)도 한약 대신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뜸·부황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 주민의 보건의료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과제로 박 교수는 ▲약물 오남용 및 민간요법 남용 예방 ▲건강·질병 교육 ▲일차의료에 대한 신뢰 회복 ▲북한주민의 질병관·질병 행태에 대한 심층 연구 등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북한의 보건의료 문제를 개선하기에 앞서 보건의료 현실과 주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위기 이후 북한 보건의료 변화와 현황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대외원조 의존도가 높은 만큼 한국과 국제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북 보건의료 지원 경향을 큰 틀에서 면밀히 파악해야 향후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이탈주민의 건강 문제를 파악하고, 정착 시기에 따라 건강관리 체계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북한이탈 청소년의 경우 키는 그대로면서 체중만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미리 경험하는 통일세대인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건강관리는 남북 보건의료통합을 위한 중요한 기반작업이자 통일 시에 나타날 수 있는 수많은 문제를 미리 대비할 수 있는 토대"라고 강조했다.
의료윤리연구회 월례강연을 경청한 이창 의협 남북의료협력위원회 위원장은 "통일 이후 남북의료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서 "수십여개 민간 단체가 백가쟁명식으로 제 각각 지원 활동을 하기 보다는 큰 틀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꾸준한 모니터링을 통해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의료윤리연구회는 3월 5일 오후 7시 신희영 서울의대 교수(서울의대 통일의학센터·소아청소년과)를 초청, '북한의료의 현실-정성의학'에 대해 살펴보는 자리를 한 번 더 마련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