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기 보다 함께 '동행'…'건강한 한반도' 꿈꾼다"

- 사단법인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김영훈 이사장·김신곤 상임이사 

남북한 보건의료 분야 격차 줄이기 노력 지금부터 서둘러야
의료인·탈북 주민 대상 '교육'에 방점…교류협력 새 모델 제시
북한 이탈주민 전수조사 통해 환경변화 따른 질병영향 연구 진행

(사)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은 남북 간 보건의료 교육을 통해 건강한 통일을 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북한의료'를 키워드로 한 봉사단체라는 점에서도 더욱 주목받는다. 정치와 이념을 떠나 생명의 기치를 높이 든 채 언젠가 찾아올 통일의 순간이 가장 건강하길 바라는 (사)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이 지나온 시간을 김영훈 이사장(고려의대 교수·고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김신곤 상임이사(고려의대 교수·고대안암병원 내분비내과)를 통해 들어본다.

남북의료교류 협력의 새 모델 되다 

남북으로 나뉜 지 어느덧 79년,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은 대한민국에서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은 그 존재 자체로 남다른 위상과 의미를 갖는다. 보건의료교육을 통해 지속 가능한 남북교류협력의 새 모델을 제시하는 대표 재단으로서 건강한 통일을 선도하겠다는 명확한 목적성과 다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은 2015년 '건강한 한반도'라는 키워드를 갖고 설립됐다. 북한과의 관계는 100% 정치적으로 움직이지만 의료계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의료계의 많은 사람이 의지를 모아 설립한 이곳의 목적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통일이 됐을 때 남북한의 의료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의대생부터 의사, 간호사, 약사 등 보건의료에 몸담은 이들이 북한에 대해 좀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그동안 재단은 북한에 대한 인식제고는 물론,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체계적인 활동을 준비해왔다. 

북한에 의약품이나 비타민 등을 단발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북한 의료계에 종사하거나 국내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탈북자들을 직간접적으로 교육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지식과 눈으로 북한 주민의 건강을 잘 돌보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라며 함께 했다. 이런 봉사의 방향은 그동안 정부나 단체에서 북한에 약을 주고 의료 장비를 설치하거나 병원을 지어주는 등 다양한 대북 의료지원을 해왔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의료인들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물고기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교육해 궁극적으로 남북한의 보건의료가 같이 협력하면서 건강한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더 큰 목표를 향하고 있다. 

재단의 출발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온 김영훈 이사장은 "국내 최고의 의료봉사상으로 꼽히는 보령의료봉사상 수상 후보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봉사하며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의료인이 받는 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우리 재단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라는 겸손한 소감을 먼저 전했다. 

재단 안팎의 일을 맡아 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김신곤 상임이사도 비슷한 소회를 밝혔다. 

"수상 소식을 듣고 관련 수상 이력을 찾아보니 북한과 관련해 상을 받은 예는 없더라고요. 통상적인 국외가 아닌 한민족, 우리 이웃을 대상으로 사역을 해왔고 그걸 10년간 이어 온 것에 대해 좀 더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단국가가 된 지 70년, 의료 부문에서의 남북의 간극은 더욱 큰데요. 훗날 통일이 됐을 때 남북한의 의료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지금부터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이념을 넘어선 의료 교육 봉사

재단은 그간 다양한 행보를 보여왔다. 정치적 경색과 상관없이 인도적, 교육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반세기 동안 다른 체제 속에서 남북한의 문화와 언어의 간극은 매우 커졌다. 하물며 의학용어는 어떨까? 북한에서는 이뇨제를 '오줌내기약', 우울증은 '슬픔증', 야뇨증은 '밤오줌증',' 휠체어는 '밀차'라고 표현한다. 이런 격차를 확인한 재단은 남북의학용어집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소통이 힘든 의학용어를 정리해 3권의 용어집을 만들었고 향후 이를 기반으로 사전편찬까지 계획하고 있다.
 
북한의 영유아를 위해 두유와 요거트를 지원하는 '솔트3.3 캠페인'도 벌였다. 바닷물이 썩지 않도록 해주는 3.3%의 소금과 같이 북한의 영유아들을 위한 작지만 소중한 역할을 하자는 목적성에 부합하는 캠페인이다.
 
국내 젊은 세대를 위해 토크 콘서트를 열고 재단의 목적과 하는 일에 대한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북한 이탈주민 중에서 의료인으로 일했거나 현재 한국에서 의과대학, 간호대학에 몸담고 있는 이들을 위해 장학금, 전문서적을 지원하며 학습 멘토링까지 맡고 있다. 장학금을 받은 이들 중에는 고려대대학원 통일보건의학협동과정을 이수하고 북한 출신 보건학 1호 박사 영예를 얻기도 했다. 재단 관계자들이 느꼈을 보람과 성취가 얼마나 컸을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프리카 수준으로 창궐해 있는 북한의 결핵 치료를 위해 의약품도 보내고 있어요. 혹자는 미사일 쏘는 나라에 왜 그런 지원을 하느냐고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결핵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OECD 결핵 발생률 1위 국가인 우리나라가 통일됐을 때 북한의 결핵 환자들이 물 밀듯 내려온다면 어떨까요? 10년, 20년 후 우리 후손에게 결핵이 퇴치된 건강한 한반도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재단의 의약품 지원 활동에 대한 김신곤 교수의 소신 발언에 이어 김영훈 이사장도 설명을 보탰다.   

"2019년도에는 국제당뇨병연맹이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저희 재단이 행정적인 부분을 돕고 김신곤 상임이사도 함께 방북해 북한의 당뇨병 전문가 200여명을 교육했습니다. 또 북한 학술지와 논문,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보건의료와 관련된 사안들을 연구하고 발표하는 통일보건의료학회 학술대회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북한과의 감염병 핫라인에 대한 논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의료문제는 앞으로 닥칠 우리들의 문제!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의 이 같은 활동과 사업들은 그저 봉사와 희생, 헌신의 영역이 아니다. 북한주민을 도움으로써 우리도 도움을 받는 역설의 현장이기도 하다. 철조망을 가운데 두고 남과 북으로 나누어 살고 있지만, 공기, 환경, 물 등은 따로 있지 않다. 북한이 겪고 있는 말라리아는 우리 쪽 접경 지역에서도 발생하고, 코로나 팬데믹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에서 특정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에게도 곧 위협이 되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런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의료인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이 경각심을 갖도록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한결같은 마음가짐이다.
 
김신곤 상임이사는 인도주의 차원의 사명의식도 강조했다. 

"저는 학생들에게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상상하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만나는 환자 외에 만나지 못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의료봉사도 나가잖아요. 그런데 바로 내 이웃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의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한반도를 사랑하는 의료인으로서 타인이 당하는 고통과 아픔에 무감각하지 않는 정체성과 사명의식이 필요합니다. 북한에 존재하는 생명의 무게도 가볍게 보지 않고 우리 생명과 다르지 않다는 맥락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베푸는 것이 아닌, 함께 나아가는 '동행'

재단에게 봉사란 곧 '동행'이다.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베푸는 것이 아닌, 눈높이를 맞춰서 같이 교육하고 서로의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한다. 환자에게 의술을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닌, 비가 올 때는 환자와 함께 비를 맞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 결과를 얻기 위해서 같이 노력하는 바로 그 길이 봉사다. 한반도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의 문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 더 나은 한반도를 위한 마음을 재단의 역할에 잇대어서 더 큰 개념의 봉사를 행하는 그들의 진심이 전해진다.
 
"보령의료봉사상은 그 무게만큼이나 함께 걷는 길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큰 의미를 잊지 않겠습니다"

김영훈 이사장은 재단이 앞으로 갈 길은 지나온 길만큼이나 가파르고 바쁠 예정이라고 말한다.

북한 이탈주민 3만 4000명의 전수데이터와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을 비교 연구를 통해 유전적인 유사성 속에서 환경 변화가 질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가 같이 동화될 때 어떻게 바뀌어 갈지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예정이다. 북한의 보건의료 연구 플랫폼이 될 수 있는 NK메드라인 웹사이트도 개설해 내년부터 북한 문제에 관심 있는 보건의료 전문가들에게 유용한 지식창고를 제공할 계획이다. 
 
"앞으로 재단은 향후 단순한 북한 의료 데이터 축적이 아닌, 아카이브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질병 통계 사업, 아카이브 구축, 용어 사전 제작 등의 사업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재단의 이런 노력을 믿고 알아봐 주시는 분들의 도움과 지원 덕분에 절실함을 안고, 보다 창의적인 모델을 만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젊은 의료인들의 개인적인 영달이 아닌, 북한과도 동행하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좋은 도구, 좋은 자극제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김영훈 이사장과 김상곤 상임이사는 향후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의 가야 할 길에 의견을 같이 했다. 

의료인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선물이라고 김영훈 이사장은 이야기한다. 김상곤 상임이사 또한 의사는 타인의 건강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역설적으로 자기 인생의 가치와 보람을 얻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아직 전쟁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반도에서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복원의료의 가치를 꿈꾸는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이들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글 이경희 보령제약 사보기자·사진 성민하 포토그래퍼]

출처 : 의협신문(http://www.doctorsnews.co.kr)